핀테크란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합성어로 핀테크 전문가는 IT기술과 금융을 연계하여 금융 거래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거래 시스템 개발 및 정보 보안 등의 일을 맡는 사람들을 말한다.
핀테크 전문가는 금융 서비스를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연구한다. 대출, 결제, 저축, 보험 가입, 투자(주식, 펀드) 등 다양한 업무를 금융기관 방문 없이 스마트폰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하며, 이 외 기부, 납세 등 부가적인 금융 서비스도 모바일을 통해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핀테크 전문가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금융 거래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만든다. 요즘은 계산대에서 카드 대신 스마트폰으로 결제가 이뤄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국내에서도 여러 지자체나 기업들의 이름이 붙은 ’OO 페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동차에서 비대면으로도 편리한 결제가 가능하다. 운전 중 내비게이션 화면 터치만으로 주유소, 주차장 등 다양한 곳에서 결제가 가능하다
핀테크 전문가는 해킹과 같은 금융 사고를 방지하는 일도 한다. 금융 서비스가 온라인으로 처리되는 만큼 보안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에 거래 기록을 하나의 서버가 아닌 여러 곳으로 나눠 저장하는 ‘블록체인’이나 지문, 얼굴과 같은 생체인식 기술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 인증서비스들이 점차 도입되고 있다. 지난 5월, 전자서명법 개정으로 공인인증서의 법적 효력이 다른 인증서들과 동일해져 다양한 전자서명 시스템이 활성화되고 있어, 이와 관련된 보안 서비스 분야가 더욱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실제로 많은 현대인들이 대출, 결제, 저축, 보험 가입, 투자(주식, 펀드)등 다양한 업무를 금융기관 방문없이 스마트폰의 앱으로 해결하고 있으며 서비스는 점차 고도화되고 있다. 향후 블록체인 기술과 자동차 산업과의 연계 등 다양한 방식으로의 혁명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핀테크 전문가의 역할과 관련 직종도 다각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1960년대는 경제적인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주도하에 적극적인 경제개발전략을 추진하던 시기이다. 국내에 축적된 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기에 정부는 경제개발 추진과정에서 부족한 자본을 동원하고 이를 전략산업에 집중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금융산업에 크게 의존하는 방법을 택했다.
고도 성장기인 1960~1970년대 금리정책의 초점은 주로 물가 안정에 맞춰져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65년 9월 30일의 ‘금리 현실화’ 조치다.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를 기존 연 15%에서 무려 30%로 단숨에 올린 이 전무후무한 조치는 물가 상승을 막아 서민 경제의 파탄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덕분에 은행에는 돈이 몰렸고 은행에서 일하는 은행원은 꿈의 직장이자, 최고의 결혼상대자로 인정받았다. 당시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인생 역전이 될 수 있는 은행 고시에 합격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1980년대에 들어 금융자율화 및 개방화가 추진됐다. 이는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과거 금융 억압에 따른 자원배분의 왜곡 등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자율화에 대한 필요성이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국외로의 사업 확장을 시도하는 미국 등 해외 선진국가들의 금융자율화 및 개방 압력도 시작됐다. 상징적으로 은행의 자율경영을 유도하기 위한 은행법 개정으로 시중은행의 민영화가 추진됐다. 국내 금융기관의 대형화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규모 증자 및 점포 확대 등의 자율화 정책이 시행되기도 했다.
주식시장의 활황으로 주식거래량이 증가하면서 1987년 전산매매가 도입됐고 본격적인 활성화가 시작됐다. 서울은 물론 지방 소도시까지 주식의 인기가 확산되어 증권사도 은행처럼 지방 도시에도 지사를 세웠다. 주식투자 인구가 400만 명을 넘어서며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증권사의 성장에 힘 입은 증권주의 상승률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보였다. 이런 이유로 증권회사 주식을 사주로 가지고 있던 증권사 직원들은 자산을 크게 불릴 수 있었고 당시 증권사에 근무하는 여직원들은 혼수품으로 아파트 한 채는 기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돈을 많이 모을 수 있어 증권사는 최고의 인기 직장으로 떠올랐다. 명문대 상경대 출신들의 로망이 주요 증권사에 취업하는 것이기도했다.
금융기술의 발전과 금융규제완화 추세로 국가 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국제간 금융거래의 자유화가 크게 진척됐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금융서비스 공급자의 출현이 촉진 되고 국내와 국제 금융시장 간의 연계성이 증가하면서 금융의 범세계화(globalization) 현상이 가속화됐다. 또한 새로운 수익원 개발을 위해 국제적 분산투자의 확대, 조세 목적의 차익거래 증가, 외환 및 파생금융상품 거래의 급격한 증가 등에 따라 국제금융거래 규모도 크게 증가했다.
펀드는 여러 사람들의 돈을 모아 주식, 부동산 등의 자산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펀드매니저는 펀드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일을 한다. 펀드매니저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모은 투자금을 수익이 날만 한 곳에 투자하고, 이에 따라 발생한 수익과 손실은 투자자들이 모두 나누어 갖게 된다.
편드매니저가 국내에 처음 등장한 것은 코스피가 1,000선을 돌파한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균나이 39.1세. 대기업 직원보다 높은 연봉. 전도유망한 직업군 중 하나였다. 2000년 초반, 펀드매니저는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직종으로 높은 인기를 얻었지만,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는 달리 수익률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울고 웃어야 하는 업무 스트레스가 가장 높은 직종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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