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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 경제

영화 브로커로 살펴보는
우리 사회의 모순
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 공식 예고편 (출처: CJ ENM Movie 유튜브)

2년 전인 2020년 중고품 거래 사이트인 당근마켓에 생후 36주 아기를 20만 원에 입양시키겠다는 글이 2장의 신생아 사진과 함께 올라왔다. 글을 올린 제주에 사는 20대 미혼모 A씨는 “아이 아빠가 없어 키우기 어려울 거로 생각했다”며 “입양센터와 절차를 상담하다가 홧김에 글을 올렸다”고 했다. 아이를 입양시키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즉각 입양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입양특례법에 따르면 입양을 보내려면 7일간의 숙려기간이 필요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사건을 알았을까. 자신의 아이를 팔려는 미혼모의 이야기를 고레에다 감독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추가했다. 영화 [브로커]다.

이 영화는 2004년 [아무도 모른다]를 시작으로 [걸어도 걸어도], [진짜 올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 [어느 가족]으로 이어져 온 다양한 가족의 계보를 잇고 있다. 칸 영화제는 18년의 여정을 격려라도 해 주듯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이라는 선물을 안겨줬다.

출처 네이버영화 : 브로커
↑ 출처 네이버영화 : 브로커

우리랑 행복해지자꾸나

거센 비가 내리던 날, 한 여성이 교회의 베이비박스 앞에 아이를 두고 간다. 연락처도 없는 짧은 편지가 있다. “우성아. 미안해. 꼭 데리러 올게” 아이를 데려가는 것은 목사가 아닌 상현(송강호 분)이다. 교회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동수(강동원 분)가 상현을 돕고 있다.

경험칙상 연락처를 남기지 않았다면 부모는 아이를 찾으러 오지 않는다. 오히려 데리러 오겠다는 쪽지를 남긴다면 교회는 아이를 입양리스트에서 빼고 보육원으로 보낸다. 상현과 동수는 그런 아이들을 입양을 원하는 부모에게 입양시켜 주려 한다. 이런저런 사유로 공적 절차를 거치고 싶지 않은 부모들이 있다. 다만 입양이 성사되면 ‘약간의’ 사례금을 받는다.

남자아이는 1,000만 원이다. 다음날 예상치도 않게 우성의 엄마 소영(이지은 분)이 아이를 찾으러 온다. 소영은 사례금을 반반씩 나누는 조건으로 입양을 허락한다. 우성은 좋은 부모를, 상현과 동수, 소영은 돈을 나눠가질 수 있을까. 하지만 아동 매매는 불법이다.
그 뒤를 형사 ‘수진’(배두나 분)과 후배 ‘이 형사’(이주영 분)가 뒤를 쫓는다.

출처 네이버영화 : 브로커
↑ 출처 네이버영화 : 브로커

미혼모 10명 중 6명 근로소득 없어 ‘생활고’

합계출산율 0.81명.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출생률이 가장 낮은 국가다. 세상에서 가장 아기가 귀한 나라지만 미혼모 혹은 미혼부의 아기는 여전히 존중받지 못한다. 세간의 시선은 따갑고, 사회적 시스템은 열악하다.

미혼모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어려움이다. 인구보건복지협회의 2018년 ‘양육미혼모 실태 및 욕구’ 자료를 보면 미혼모의 월평균 소득은 92만 3,000원에 불과했다. 근로소득으로 45만 6,000원, 복지지원으로 37만 8,000원을 받았다. 51%는 무직 상태였다. 취업한 미혼모가 37%, 학생이 12%였다. 직장이 있다고 해도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경우는 31.6%에 불과했다.

임신으로 인해 직장을 중단한 비율은 59.1%, 양육으로 인해 직장을 중단한 비율은 47.4%였다. 그러니까 미혼모는 직장을 얻기 힘들거니와 설사 직장이 있더라도 임신과 양육에 대한 부담이 커 제대로 일하기 어려운 이중고를 겪고 있다. 실제 양육에서 어려운 점을 꼽아달라는 질문에는 ‘재정적 어려움’이 34.3%로 가장 많았고, 이어 직장과 학업 병행의 어려움(22%)이 뒤를 이었다.

양육 미혼모 생활실태 *10~40대 미혼모 359명 조사-월평균 소득:92만 3,000원,월평균 근로소득:45만 6,000원
↑ 자료 : 인구보건복지협회

소득이 적다 보니 병원 문턱도 높아졌다. 경제적 이유로 병원에 가지 못하는 비율이 본인은 63.2%, 아이도 29.0%나 됐다. 산모와 아이의 건강이 위협받는 이유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버리는 비율은 꾸준히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8년 입양 통계를 보면 출생아 수 1만 명당 유기되는 아동 수가 2012년 4만 8,000명에서 2018년 9만 5,000명으로 늘었다.

2020년 당근마켓 사건 이후 사회적으로 한부모 가정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정부는 ‘고딩 엄빠’인 청소년 부모 가구에 월 35만 원의 자녀 양육비를 지원하고, 저소득 한부모 가정에는 기저귀와 분유를 지원하는 등 정책을 강화하고 있지만 혼자서 아이를 키우기에는 여전히 많이 모자라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처럼 학생 아빠가 혼자서 딸을 잘 키워내는 것은 아직은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심지어 드라마 속에서조차 아빠는 법대생이던 자기 삶을 포기해야 하는 ‘희생’을 치렀다.

출처 네이버 영화 : 브로커
↑ 출처 네이버 영화 : 브로커

동수가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들을 입양 보내려 하는 것은 돈 때문만은 아니다. 동수는 우성을 가장 잘 키울 수 있는 최고의 양부모를 찾아주고 싶다. 동수는 안다. 보육원에서 커서는 잘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 동수가 있던 보육원에서도 대부분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성인이 되는 만 18세가 되면 보육원에서 나와야 한다. 기관의 보호가 종료되었다는 뜻에서 이들을 ‘보호종료아동’이라 부른다. 혹은 자립할 때가 되었다는 뜻으로 ‘자립 준비 청년’이라고도 부른다. 보호종료아동들에게는 500만 원의 사회정착금을 준다. 하지만 이 돈만으로 사회에 잘 정착하기는 어렵다. 당장 집을 구하는 것부터가 부담이다. 직장을 잡지 못하고 몇 달 방황하면 주머니는 빈털터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세상 끝에 내몰리는 ‘보호종료아동’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0년 ‘보호종료아동 자립 실태 및 욕구 조사’를 보면 자립 준비 청년 절반(50.0%)이 ‘죽고 싶다고 생각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런 비율은 19~29세 전체 청년을 대상으로 실시된 2018년 자살실태조사의 16.3%와 비교해 3배 이상 높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에 대해 33.4%가 ‘경제적인 문제’를 꼽았다. ‘가정생활 문제’(19.5%), ‘정신과적 문제’(11.2%), ‘성적·진로 문제’(6.5%)도 많았다.

자료 : 2016 보호종료아동 자립 실태 조사-보건복지부
↑ 자료 : 2016 보호종료아동 자립 실태 조사-보건복지부

사회에 나온 뒤 자립 준비 청년의 부채는 늘어났다. ‘부채가 있다’는 답은 응답자 4명 중 1명에 해당하는 24.3%에 달했다. 평균 부채액은 605만 원이었다. 부채를 가진 비율은 자립 1년 차 때 15.3%에서 점차 높아져 자립 5년 차 때는 34.5%나 됐다. 평균 부채액도 1년 차 572만 원서 5년 차 770만 원으로 증가했다. 보육원에서 나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경제적으로 실패하는 보호종료아동들이 많다는 뜻이다.

보육원에서 나온 뒤 연락이 끊기는 청년들도 많다. 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의 ‘아동 자립 지원 통계 현황 보고서’를 보면 자립 준비 청년 중 연락 두절 비율은 2020년 23.1%였다. 그나마 2018년 33.3%, 2019년 26.3%보다는 낮아졌다.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지난 2019년 이들에게 월 30만 원을 5년간 주는 자립 수당이 만들어졌다. 이른바 ‘자립 준비 청년 자립 수당’으로 올해 8월부터는 5만 원이 인상된 35만 원이 지급된다.

내년에는 40만 원으로 늘어난다. 서울시는 정착자립금을 내년부터 1,500만 원으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또 보호종료아동들이 원하면 만 24세까지 보육원에 더 머무를 수 있도록 기간도 늘렸다.

하지만 돈도 돈이지만 이들이 자립을 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하고, 정서적 지원을 위한 컨설팅을 강화하는 등 지원시스템의 내실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자립 준비 청년 자립 수당 출처 : 보건복지부
↑ 출처 : 보건복지부

2011년 아름다운재단의 설문조사를 보면 보호 종료로 자립 준비 청년이 된 113명 중 심리적으로 어렵다는 응답이 79명으로 집 구하기 어려움(87명), 생활비 불안(84명), 자립정착금 부족(83명) 등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한해 보호가 종료되어 사회로 나오는 자립 준비 청년들은 2,500명가량 된다. 보호 종료 이후 5년간은 아동복지법상 사후관리 대상이 되는데 5년이 지나면 이들을 관리조차도 하지 않는다. 적지 않은 아이들을 성인으로 잘 키워놓고도, 인적자원들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 귀한 나라의 또 다른 아이러니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출처 네이버 영화 : 브로커
↑ 출처 네이버 영화 : 브로커

미혼모와 보호종료아동. 영화 <브로커>는 민감한, 그러나 인과관계가 있는 두 가지 소재를 고레에라 감독은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따뜻하게 빚어냈다. “해진아, 상현아, 동수, 우성아, 태어나줘서 고마워” 불 꺼진 모텔에서 미혼모 소영은 이 순간 자신의 곁에 있는 이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소영이도 태어나줘서 고마워” 축구선수를 꿈꾸는 10대 소년 해진이도 소영에게 화답한다. 태어나줘서 고맙다, 고레에라 감독이 세상에 전하고 싶었던 궁극의 메시지는 이 한 문장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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