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엔씨네마
글. 박병률 경향신문 콘텐츠랩부문장
영화 <두 인생을 살아봐>로
읽는 국민연금 출산 크레딧
한국 초저출생 현상에 던지는
따뜻한 메시지
한국 초저출생
현상에 던지는
따뜻한 메시지
합계출산율 0.7명.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초저출생에 조앤 윌리엄스 미 캘리포니아 명예교수는 “한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탄식했다. 정부는 물론 기업까지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묘책이 보이지 않는다. 초저출생은 경제는 물론 정치·사회·문화·교육·부동산 등 수많은 문제가 얽히고설킨 결과다. 그 때문에 단번에 해결하기보다 실마리를 찾아 한올 한올 풀어나가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

한 여자의 두 인생을 풀다


와누리 카히우 감독의 영화 <두 인생을 살아봐>는 초저출생 해법을 위한 작은 실마리를 던지는 영화다. 임신과 출산, 양육이 여성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출산을 위해 가족과 공동체는 어떤 조력을 해야 하는 지를 여성 감독의 시각으로 풀어나간다.
나탈리는 대학 졸업 후 성공한 애니메이션 작가가 되겠다는 꿈이 있다. 이를 위해 친구 카라와 LA로 떠날 계획까지 세웠다. 졸업 축하 파티에서 나탈리는 속이 너무 좋지 않다. 편의점 스시를 잘못 먹었을까? 하지만 짚이는 게 있다. 친구 게이브와 졸업 전날 선을 넘었다. 설마 하면서 임신 테스트를 해본다.
여기, 두 명의 나탈리가 있다. 한 명은 LA에서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나탈리, 또 한 명은 텍사스 본가에서 홀로 딸을 낳아 키우는 나탈리다. 임신 테스트에서 음성이라면 전자, 양성이라면 후자가 될 것이다. 영화는 두 명의 나탈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교차하면서 보여준다. 선택에 따라 다른 삶을 살게 되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영화 <슬라이딩 도어스>가 채용했던 바로 그 방법이다.
임신을 확인한 나탈리는 LA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출산을 결정한다. 친구 이상의 끌림이 없었던 게이브와 결혼하지 않고 딸 루시를 홀로 키우기로 한다. 하지만 막 대학을 졸업한 20대 중반 미혼모의 삶은 쉽지 않다.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친구 카라가 LA 생활에 열심히 적응하는 것을 부러워하면서도 상처를 입는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하기』와 같은 책을 읽고 있어야 할 20대의 나탈리는 태아의 발길질을 느끼며 태교에 전념한다.
마침내 출산을 하지만 육아도 쉽지 않다. 밤새도록 깨는 아이 때문에 일상은 더욱더 엉망이 된다. 엄마는 나탈리의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나탈리의 머리를 단발로 잘라 주지만, 이마저도 아줌마처럼 보여 싫다. 무얼 입어도, 무얼 발라도 20대 젊고 패기 있던 나탈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젠 내 삶이 없어진 것 같아. 그림도 안 그리고, 친구들도 안 만나고.
난 아무것도 안 해. 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진짜로.”
“이젠 내 삶이 없어진 것 같아.
그림도 안 그리고, 친구들도 안 만나고.
난 아무것도 안 해.
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진짜로.”

출산 크레딧,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꺼리는 원인 중의 하나는 ‘경력 단절’이다. 출산부터 유아기까지 아이 곁을 지키다 보면 몇 년의 시간이 훌쩍 흐른다. 동료들이 일터에서 차곡차곡 경력을 쌓는 동안 출산과 육아로 생긴 공백은 자신의 커리어에 치명적일 수 있다.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됐다지만, 여전히 출산 휴가와 육아 휴가에 부정적인 일터도 적지 않다. 여성 개인에게 손실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흔쾌히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그런 점에서 임신과 출산에 대해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중요하다. 국민연금은 출산과 양육으로 인한 경력 단절로 연금 가입이 중단되는 것에 대한 대책으로 출산 크레딧을 마련했다. 출산 크레딧은 2008년 1월 1일 이후 둘째 자녀 이상을 갖는 경우 국민연금의 가입기간을 추가로 인정해 주는 제도다. 둘째 자녀 12개월, 셋째 자녀 30개월, 넷째 자녀 48개월, 다섯째 자녀 이상은 50개월을 추가로 인정해 주는 만큼 향후 받을 수 있는 연금은 더 많아진다.
출산 크레딧은 출산 후 곧바로 인정되지 않는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수급권을 취득하고(가입기간 추가 시 수급권을 취득할 수 있는 경우 포함) 노령연금을 받을 시기가 됐을 때 추가 가입기간이 반영된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연금 수령자가 사전에 별도로 국민연금에 신청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출산 크레딧에 따른 국민연금 추가 가입기간은 부모 양쪽에게 균등하게 부여된다. 다만 합의한다면 한 사람이 추가 가입기간을 모두 가져갈 수 있다. 이 경우 부모 중 한 명이 먼저 연금 지급을 청구한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합의서를 제출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저출생 지원은 출산과 육아에 집중돼 있다. 그런 점에서 노후에 도움을 주는 출산 크레딧은 의미가 크다. 공공이 출산에 대해 끝까지 지원한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기와 부모를 지키는 사회 안전망은 필수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출생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든든한 지원 체계와 함께 사회적 협조도 필요하다. 영화에서 나탈리의 가족은 미혼모가 된 그를 든든히 지켜준다. 출산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딸 나탈리에게 엄마는 말한다. “네 아빠랑 내가 (네 곁에)있을 꺼야. 무슨 일이 있어도”. 딸 루시는 법적 아빠가 없지만 엄마와 할머니·할아버지, 그리고 편견 없는 학교가 일상적인 삶을 누려 나가는 데 부족함이 없게 한다. 어떤 상황이든 애를 낳아만 준다면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겠다는 서구적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나탈리는 가족과 친구의 지원 속에 다시 애니메이션을 그리고, 그가 그린 웹툰 <밤 올빼미>가 인기 웹툰으로 선정된다. 독자와의 만남에서 “딸을 재우는 루틴에서 <밤 올빼미>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고요?”라는 질문에 나탈리는 이렇게 답한다.
“제 딸은 몇 달간 야행성이었어요. 우린 제정신이 아니었죠. 그러다 어느 순간 딸을 아기 올빼미로 부르기 시작했죠. 근데 다른 사람들도 재밌어할 줄은 몰랐어요.”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경험이 나탈리 작품에 독창성을 부여한 셈이다.
임신하지 않고 LA에 진출했던 나탈리, 루시를 낳고 공백이 있었던 나탈리. 두 사람은 모두 원하는 꿈에 다가간다. 출산과 육아는 그녀의 성공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금 돌아갔을 뿐 육아의 경험은 오히려 기회가 됐다.
초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경력에
약점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적어도 하나의 실마리는 풀 수 있지 않을까?
초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경력에
약점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적어도 하나의 실마리는
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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