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고창읍성은 고을 읍내 한복판의 나지막한 평지에 위치한 순천 낙안읍성, 서산 해미읍성과 달리 읍내 남쪽 반등산 자락을 따라 축조되었다. 고려 말부터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지역의 특성상 방어의 목적이 강화된 결과다. 기록에 따르면 고창읍성은 그 둘레만 1,684m에 높이는 4~6m에 이르고, 관아를 비롯해 무려 22개 건물이 들어섰다고 한다. 대부분 건물은 잇따른 전쟁으로 모두 소실되었지만,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으로 쌓은 성벽만큼은 지금껏 온전한 형태로 남아 문화유산으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또한 고창읍성을 배경으로 한 성밟기놀이도 전해져 내려온다. 마을 여인들이 손바닥만 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한 바퀴 돈 다음 그 돌을 입구에 쌓아 두면 병을 물리치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쌓인 돌은 전투가 벌어질 경우 무기로도 사용됐다니 이보다 더 실용적인 민간신앙이 있을까 싶다. 성내에는 흥선대원군이 나라의 문을 걸어 잠그며 세웠던 척화비와 울창한 맹종죽림, 성밖에는 조선 후기 판소리 대가로 꼽히는 신재효의 생가가 볼거리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