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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트렌드

나의 행복과 성장의 시작
개인 취향 공략하는 ‘디깅 모멘텀’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MZ 세대는 몰입을 중요시하는 특성이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라면 돈도 시간도 아끼지 않는 디깅러(Digging+er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가 늘고 있다고 한다. 디깅 모멘텀이란, 자신의 취향에 맞는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행위를 말한다. 흔히들 말하는 덕후처럼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에 푹 빠지고, 더 나아가 콘텐츠 소비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파고듦을 통해 성장과 행복을 추구하는 트렌드 디깅 모멘텀 이야기를 소개한다.

글 김고금평 머니투데이 기자
디깅 모멘텀

‘집중’, ‘철학’이 깃든 MZ세대들의 ‘몰입의 의미’

과거 공부의 몰입은 조용한 공간, 필기도구와 스탠드 조명, 책에서 눈을 ‘절대’ 떼지 않는 정신력으로 정의됐으나, 지금은 구한말 유물 같은 얘기다. 지금 공부의 몰입은 최소한 해리포터의 여주인공 헤르미온느를 소환하지 않고선 대화가 불가능하다. 그 정도 스토리가 돼야 알파세대(2010년 이후 출생한 세대)는 물론,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에게 ‘몰입의 의미’가 비로소 이해된다.

‘헤르미온느 공부법’은 이렇다. 담요를 망토처럼 둘러주고 머리가 길다면 푼 뒤 해리포터 BGM(배경음악)을 무한 반복 튼다. 이제 책을 펼쳤다면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말하면서 공부해야 한다. 특히 옆에 있는 사람에게 과외하듯 가르치는 느낌으로 공부하는 게 포인트다.
기성세대가 들으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할 테지만, 공부하려면 최소한 이 정도 몰입을 투영해야 하는 학생들의 ‘집중 방식’과 ‘철학’을 얕잡아 볼 수만은 없다.

비단 헤르미온느 콘셉트만 있는 건 아니다. ‘왕족 공부법’은 자신이 왕족으로 둔갑해 “오늘 암기가 잘 안되는군” 하며 다독이는 제스처로 공부하는 방식이고, ‘바퀴벌레 공부법’은 바퀴벌레가 위기감을 느끼면 아이큐가 340까지 올라간다는 속설을 자신에게 대입하는 식이다. 하나같이 ‘비정상’으로 보이지만, 몰입, 아니 과몰입은 분명 ‘일반적’일 수 없고 ‘상식’에도 부합하기 힘들다.

오직 나만의 취향에 집중한 ‘OO에 진심인 사람들’

자신의 취향을 종전보다 더 깊게 파고드는 ‘OO에 진심인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미 넘쳐나는 일반적인 방식이 지겹고 관행이 주는 따라 하기는 가짜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더 다르고 깊고 이상한 방식으로 대상을 대하는 사례가 이어지는 것이다. 어떤 분야를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경우도 있고 취미를 독특한 방식으로 향유하는 사례도 있고 비상식에 끌리는 경우도 있다. 형태가 무엇이든 모두 ‘몰입의 새로운 접근’이라는 점에서 소비 시장도 이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3’이 어느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트렌드를 ‘디깅 모멘텀’(Digging Momentum)이라고 정의했다. 과몰입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면, 디깅은 좀 더 중립적이고 (트렌드에) 정확한 표현으로 추천된다. 발굴의 뜻을 지닌 디깅은 대중음악에서 새로운 장르를 찾아내고 유행하는 음악의 동향을 분석하는 행동을 설명하는 용어로 처음 사용됐는데, 2020년 이후 다른 분야로까지 확대됐다. 몰입은 이전에도 여러 키워드로 수식되곤 했다. 일본의 오타쿠, 이를 한국식으로 바꾼 덕후, 지능은 뛰어나지만 미국의 너드(nerd), 적극적 팬덤 공세를 펼치는 팬슈머(fansumer, 팬+소비자) 등이 그것에 해당된다.

디깅은 이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털고 긍정과 진화의 결을 입힌 새로운 몰입 문화인 셈이다. 여기에 물리학에서 주로 쓰던 개념인 모멘텀을 정치·경제·사회 등에서 응용해 어떤 흐름을 다른 방향으로 바뀌는 계기 혹은 전환점의 의미로 쓴다.
디깅 모멘텀은 결국 어떤 행위가 취미생활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과 행복을 찾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피력하는 용어다.

디깅 모멘텀의 세가지 유형

종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콘셉트형 디깅’이다. 위에 언급한 다양한 공부법처럼 자신이 좋아하고 공감하는 이미지를 콘셉트로 잡고 이를 적용함으로써 효율을 높인다. 이 디깅은 극사실주의(하이퍼 리얼리즘)가 중요하다. 공부법도 그렇듯, 유튜브나 틱톡의 짧은 영상에서 호응을 얻는 영상들은 ‘사회생할 안 해본 애들 특징’ ‘자존감 낮은 연애 특징’ 등 매우 리얼하게 묘사해 몰입의 정도를 높이는 극사실 콘텐츠들이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콘셉트에서 음식점도 예외는 아니다. 호주의 대화형 식당 ‘카렌스다이너’(Karen’s Diner)는 ‘세상에서 가장 무례한 곳’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운다. 손님을 가볍게 무시하는 건 기본,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주문 손님에게 짜증을 내는 건 선택일 정도로 안하무인이지만, 손님들은 되레 재미있고 신선하다고 평가한다. 이런 콘셉트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들의 인기를 등에 업고 이 식당은 전 세계 11개가 넘는 지점을 두기도 했다.

두 번째 ‘관계형 디깅’은 덕후를 스스로 밝히는 ‘덕밍아웃’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끼리 서로 소통하고 특정 대상에 몰입하는 유형이다. BTS(방탄소년단)나 임영웅의 팬질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의 디깅은 때론 새로운 콘텐츠 생성에도 기여한다. 지난해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큰 인기를 끌자, JTBC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이 드라마 주인공인 박은빈과 강태오의 이전 출연작들을 짜깁기한 새로운 페이크(가짜) 드라마를 제작했다. 서로 다른 엉뚱한 장면들을 잘라 붙였지만, 대사가 자연스러워 ‘당장 방영해도 될 수준’이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디깅러들의 몰입이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통했다.

마지막 ‘수집형 디깅’은 말 그대로 물건이나 캐릭터를 수집하는 유형이다. 세븐일레븐은 지난해 포켓몬, 짱구, 산리오 캐릭터로 구성된 ‘캐릭터 마이키링 3종’을 출시해 두 달 만에 누적 판매량 200만 개를 돌파했다. 레고의 경우 레테크(레고+재테크)까지 등장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지난 15년간 출시된 한정판 레고 세트의 중고 가격 상승률과 금·주식 투자 수익률을 비교한 결과 레고의 수익성이 훨씬 좋다고 결론 냈다. 뮤지컬처럼 물건이 아닌 경험을 수집하는 디깅 사례도 적지 않다. 인터파크가 지난해 뮤지컬 관객 중 N차 관람 관객을 조사했더니, 2021년 한 해 같은 작품을 가장 많이 반복해서 본 관객의 관람 횟수가 86회였고 뒤이어 77회와 72회였다.

디깅 모멘텀의 세가지 유형

  • 콘셉트형 디깅

    콘셉트형 디깅

  • 관계형 디깅

    관계형 디깅

  • 수집형 디깅

    수집형 디깅

현실에 충실한 개방적 ·열정적인 덕후들의 세상

디깅의 유형이 콘셉트이든 관계형이든 수집형이든 이들에게 보이는 하나의 공통점은 현실 도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오타쿠나 덕후 개념에선 은둔형 외톨이나 폐쇄적 몰입이 주요 부정적 특징으로 설명되곤 했는데, 디깅 문화에선 되레 개방적이면서 자랑질이 넘치고 독특함에서 더 특별함을 느낀다.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에 진심인 데다, 열정적이라는 점에서 희망적이기까지 하다. 디깅이 어떤 특정 세대에 국한한 한계적 취미 현상으로 보는 것도 선입견에 불과하다. 코난테크놀로지가 디깅, 과몰입, 팬덤 등의 키워드 언급량을 통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2030세대의 디깅 관심이 4050세대보다 높지만, 4050세대 관심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30세대는 특히 다른 어떤 세대보다 가상 세계를 또 하나의 현실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적 영향으로 몰입의 적응도가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안한 미래를 마주할수록 잠깐의 몰입이 주는 행복감은 내일의 스트레스나 불안을 이기는 활력소가 될 수 있다. 나아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창조의 세계로 한발 디디는 효과까지 노려볼 수도 있다.
다만, 지나친 딥디깅(deep digging)은 여러 중독의 부작용 사례에서 보듯 주의가 요구된다. 디깅 모멘텀이 이전의 부정적 과몰입 상태가 빚은 또 다른 현실 도피가 될지, 자신의 성장을 담보한 치열한 몰입의 현장이 될지 그 기울기는 ‘조율의 미학’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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