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 전화 걸고 싶은 작품
이보다 더 어울리는 감상평이 있을까. 영화의 댓글란에 한 네티즌은 이렇게 총평을 남겼다. 정말 그렇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마자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꺼내 ‘어머니’ 혹은 ‘아버지’를 검색하게 된다. 이 마법 같은 영화는 마츠오카 조지와 니시타니 히로시가 함께 연출한 <도쿄타워>(2007)다. 2004년 개봉된 미나모토 타카시 감독의 <도쿄타워>와 구분하기 위해 국내에서는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로도 불린다. 오다기리 죠가 영화의 주연, 마사야 역을 맡았다.
원작은 릴리 프랭키의 소설 <도쿄 타워: 어머니와 나, 때때로 아버지>다. 원작 소설이 먼저 크게 흥행했다. ‘히라가나로 된 성서’ ‘모든 언론이 극찬한 국민소설’ 등의 극찬을 받았다.
2006년 전국서점 직원들이 꼽은 그해 최고의 신간인 서점대상(제3회)을 수상했다. 이 기세로 2007년 영화화됐는데 영화 역시 이듬해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감독상, 최우수 여우주연상 등 일본 아카데미상(제31회)을 휩쓸었다.
이 이야기는 도쿄에서 따로나와 고향으로 돌아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도쿄에 와 돌아갈 곳을 잃은 나와 그리고 한번도 그런 환상을 품지 않았음에도 도쿄에 따라와 돌아가지도 못하고 도쿄타워 밑에서 잠든 우리 어머니의 소소한 이야기 입니다
영화는 도쿄 한복판 병실에서 창밖 도쿄타워를 바라보는 한 남자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이 남자의 곁에는 어머니가 누워있다. 일본의 고도 성장기이던 1960년대. 한밤중 술에 취해 들어온 아버지는 심한 술주정을 부린다. 예술열이 있는 아버지의 자유분방함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아버지와 헤어져 외할머니가 사는 고향 탄광촌으로 간다. 북큐슈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에서 하루에 단선열차 8편만 다니는 작고 오래된 탄광 마을로 거처를 옮긴 어머니는 동생부부가 하는 식당에서 일하며 아들 마사야를 키운다.
하지만 마사야는 이 탄광촌이 답답하다. 더 큰 세상을 갈망한다. 열다섯, 그는 더 큰 도시에서 미술공부를 하기 위해 떠난다. 떠나는 마사야에게 어머니가 남긴 편지에는 오로지 아들을 응원하는 말만 힘차게 적혀 있다. 하지만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 만난 세상은 마사야가 주체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과도한 자유로움과 해방감. 처음 품었던 원대한 뜻과 달리 마사야는 풀어지기 시작했다. 도쿄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지만 술과 담배, 도박에 빠져 빈둥거리는 것은 여전하다. 어머니는 아들의 비싼 등록금을 대기 위해 식당에서 힘들게 일한다. 어머니가 바라는 건 단 하나. 잘 졸업해서 성공적인 삶을 살기. 하지만 아들은 무기력하다. 취직은 못하고 집세는 밀리고, 곳곳에서 사채 빚은 쌓이고, 곁에 있던 친구들은 떠나는 뭔가 엉망진창인 삶. 그때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몰랐어? 어머니 암에 걸렸어”
1958년 333미터의 높이로 완성된 도쿄타워는 1970년대 청춘을 보냈던 일본인들에게는 꿈의 상징이었다. 고도성장의 시기, 많은 청년들이 도쿄타워를 길잡이 삼아 모여들었다. 도쿄타워는 도쿄의 한복판에, 일본의 한복판에 지금도 ‘팽이 심’처럼 박혀 있다. 언제나 그곳에 있다고 믿기 때문일까. 몇 십년을 살아도 잘 안 올라가지는 곳이 도쿄타워다. 마사야에게도 그랬다. 10년을 살아도 올라가보지 못한 곳. 마사야에게 어머니도 그런 존재였다. 언제나 그곳에 있을 것 같은. 마사야는 말한다.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는 것, 그것을 사람들은 당연하듯 갈구한다. 하지만 영원하지 않다면 모든 것은 환각이다” 라고.
하지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마사야는 일러스트, DJ 등 N잡러를 하며 돈을 모은다. 그리고는 상가에 집을 마련했고, 어머니를 도쿄로 모신다. 어머니를 떠난 지 15년 만이었다. 이제 마사야는 어머니에게 제대로 된 효도를 할 수 있을까.
아들에게 모든 것을 준 어머니의 노후는 불안하다. 마사야가 묻는다 “저금, 하나도 없겠네” 어머니가 답한다. “벌써 다 없어졌지” 마사야가 또 묻는다. “연금은 어떻게 됐어” 어머니가 또 답한다 “연금도 뭐 내기가 힘들어져서. 중간에 못 내서 받지도 못해” 그리고 어머니가 덧붙인다. “저금이고 뭐고 여기에 다 쏟아부었어. 이게 내 전 재산이다. 빈털터리야”
액자에 넣어둔 아들의 졸업장을 보물 마냥 감싸 안는 어머니. 한국의 어머니도 그랬다. 자녀의 대학공부를 위해서라면 논밭도 팔고 소도 팔았다. 행여 몸이 아파도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연신 “나는 잘 있다. 열심히 공부해라” 는 말만 했다. 그래서 한때 우리의 높은 교육열 혹은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 불렀다. 소의 뼈로 쌓은 탑이라는 뜻이다. 우골탑이라는 단어에는 자녀교육을 위해 기꺼이 희생했던 부모님의 꿈과 땀과 고통이 담겨있다.
부모는 화수분이 아니다. 자녀부양에 많은 돈을 쓴 뒤 맞은 노후는 위태롭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가장 나쁘다. 2020년 기준 65세 이상 한국 노인의 빈곤율은 40.4%에 달한다. 2021년 기준 OECD회원국 노인 빈곤율 조사를 보면 일본 20.0%, 호주 23.7%, 미국 23.1% 프랑스 4.4%에 불과하다. 돈 쓸데가 많아 저축이 어려웠고 급할 마다 퇴직금을 중간정산해야 했던 부모님 세대는 돈을 모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연금제도도 미성숙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 49.2%에 달했던 노인 빈곤율은 10년 새 10%포인트 가까이 낮아졌다. 노인 빈곤율이 낮아지는 데는 공적연금이 한층 강화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국민연금에는 보장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있다. 마사야의 어머니처럼 연금가입기간이 적거나 연금수령액이 적다면 추납제도를 활용해 볼 수 있다. 국민연금의 의무가입이라 소득이 있는 만 18세 이상 만 60세 미만이라면 누구나 가입해야 한다. 하지만 만60세가 되기까지 10년, 즉 120회 차를 납입해야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만약 납입기간이 10년이 되지 않는다면 그간 납입했던 보험료를 일시금으로 지급한다. 하지만, 살다 보면 납부가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실직, 사업중단, 경력단절, 군복무기간 등의 이유로 보험료를 납부할 수 없었던 기간에 대해서 추후납부(추납)를 할 수 있다. 추납은 개인마다 납부가능한 개월수가 다르며, 최대 119개월까지 납부 가능하다. 추납 기간이 길거나 현재의 재정 상황이 어려워 한 번에 모든 보험료를 납부하기가 힘든 경우에는 분할납부도 가능하다. 보험료는 최대 60회에 걸쳐 납부할 수 있는데 다만 1년 만기 정기예금 이자율만큼 이자가 발생한다.
어머니 역을 맡은 키키 기린은 일본의 국민배우로 불린다. 그는 이 연기로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영화 촬영당시 실제 유방암 투병 중이었다고 한다. 또 하나. 극 중 젊은 시절의 어머니가 키키 기린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렇게 봤다면 눈썰미가 상당한 거다. 젊은 어머니를 연기한 우치다 야야코는 키키 기린의 친딸이다. 고사성어에 풍수지탄(風樹之歎)이 있다. 공자에게 고어라는 사람이 슬피 울며 말하기를 “공부한다고 집을 떠났다가 고향에 돌아와 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떴다” 고 했다. 여기서 유래됐는데 ‘바람과 나무의 탄식’ 이라는 뜻으로 부모에게 효도를 하려고 할 때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게 됐음을 이르는 말이다.
세상 모든 어머니는 자기가 어땠든 아들이 세상에서 자기역할을 하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솟는 사람이다. 마사야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긴다. 정말 고마웠다고. 도쿄생활은 정말 즐거웠다고. 착한 아들을 두어서 행복한 마지막을 맞이하게 됐다고. 마사야에게는 어머니와의 도쿄생활이 너무나 짧았지만, 그것 만으로도 어머니는 여한이 없었다.
영화는 도쿄타워를 건설되던 모습과 완공된 모습을 흑백화면과 컬러화면으로 교차 편집하며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비춘다. 성공을 꿈꾸며 달려갔던 도쿄타워는 지금 일본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에게 ‘인서울’ 러시는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혹시나 남산타워, 롯데월드타워 아래서 어디로 갈지 몰라 여전히 ‘뱅뱅’ 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 <도쿄타워>는 정신없이 앞으로만 달려왔던 우리에게도 많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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