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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Don’t Look UP이 바라본 미디어 세상
“죄송한데, 저희 말이 어렵나요?”
…연성뉴스, 가짜뉴스의 끝은
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 공식 예고편 (출처: 넷플릭스 유튜브)

정확히 6개월 14일 후 공룡을 멸종시킨 것보다 더 큰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 혜성은 거대한 쓰나미를 일으키고 지구의 모든 종은 멸망한다. 혜성의 궤도를 틀지 못한다면 모두 끝장이다. 그런데 중간선거에 골몰해 있는 대통령은 불편한 진실을 피하려 한다. 방법은 언론밖에 없다. 대중에게 진실을 폭로한다면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아담 맥케이 감독은 손사래를 친다. 아닐 수도 있다고. 24시간 내내 지구촌 뉴스와 다양한 정보가 쏟아진다. 소셜 미디어도 정보를 실어 나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뉴스는 대중의 주의를 끌지 못한다. 재미가 없다면 선택받지 못한다. 뉴스는 쇼가 됐고, 진행자는 연예인이 됐다. 가짜뉴스는 빠르게 확산되면서 사실과 거짓을 뒤섞어버린다. 영화 <돈룩업>은 과학이 소재지만, 겨누는 소재는 따로 있다. 미디어도 그중 하나다.

네이버 영화 : 돈 룩 업
네이버 영화 : 돈 룩 업
↑ 출처 네이버 영화 : 돈 룩 업

천문학자 민디 박사와 대학원생 케이트는 지구로 달려오는 혜성을 발견한다. 에베레스트만 한 초대형 혜성. 지구를 박살 내고도 남을 크기다. 다행히 인류는 공룡이 아니다. 정확한 충돌 날짜를 계산해 냈고, 혜성의 궤도를 바꿀 과학기술도 갖고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위기다. 그런데 전제가 있다.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 위기가 정말 위험하다는 것을 함께 인지하고, 가용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

네이버 영화 : 돈 룩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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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네이버 영화 : 돈 룩 업

지구상에서 이를 해낼 수 있는 리더십은 미국 대통령이 갖고 있다. 민디 박사와 케이트가 올린 미국 대통령을 찾아가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두 사람은 아주 심각한 모습으로 올린 대통령에게 전대미문의 위기를 설명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표정이 이상하다. 시큰둥, 그 자체. 중간선거를 3주 앞둔 그에게 6개월 뒤 찾아온다는 혜성은 너무 먼 미래다. 문전박대를 당한 민디 박사와 케이트는 언론에 폭로하기로 한다. 지구충돌확률은 100%. 그들의 눈에 혜성 충돌은 피할 수 없는 팩트다. 언론이라면 팩트를 무겁게 다뤄 줄 것이다. 대통령과 나눈 대화를 발설하면 안 된다는 기밀조항이 있지만 진실을 막을 것은 그 무엇도 없다.

네이버 영화 : 돈 룩 업
↑ 출처 네이버 영화 : 돈 룩 업

어라, 이상하다. 민디 박사와 케이트가 나가기로 한 방송은 생방송 아침 토크쇼인 ‘데일리 립’. 다들 못 나가서 안달인 프로그램이란다. 민디 박사의 아내도 즐겨본다. 뭔가 안 맞는 것 같지만, 좋다. 시청률이 높을수록 반향도 크지 않겠나. 그런데 이상한 건 역시 이상하다. 인류멸망이라는 엄청난 폭로를 갖고 왔건만 마지막에 출연해 달란다. 앞에는 대법관 후보자의 과거 포르노 방송 출연 경력, 인기가수의 결별설 아이템이 놓였다. 방송 제작진은 출연대기실에 있는 케이트에게 말한다. “가볍고 유쾌하게 얘기해주세요. 진행자인 잭과 브리가 잘 맞춰줄 거예요”

네이버 영화 : 돈 룩 업
↑ 출처 네이버 영화 : 돈 룩 업

 “오늘 마지막 게스트는 놀라운 발견을 한 분들입니다!” 민디 박사와 케이트를 소개하는 진행자의 표정은 전혀 진지하지 않다. 그래도 혜성이 곧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는 ‘팩트’를 듣는다면 이들도 경악할 것이다. 이성을 잃고 자제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 진행자 잭이 웃으며 말한다. “그 피해가 뉴저지 해안에 있는 제 전처 집까지 미칠까요?” 더는 참지 못한 케이트가 외친다. “죄송한데, 저희 말이 어렵나요? 저희가 하려는 말은 지구 전체가 파괴될 거라는 말 거에요!”

뉴스는 크게 경성뉴스(Hard News)와 연성뉴스(Soft News)로 나뉜다.
경성뉴스는 공적인 영향력을 지니며 시간이 지난 뒤에도 계속해서 큰 영향을 미치는 뉴스를 말한다. 전당대회, 세제개편, 무역 전쟁 등 정치, 경제, 외교 관련 뉴스들은 경성뉴스다. 테러, 인종차별, 시위, 혐오범죄도 경성뉴스에 속한다. 형식으로 보자면 주로 육하원칙으로 작성되는데 우리가 흔히 봐오던 뉴스들이다. 재미는 없지만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연성뉴스란 인간적인 흥미를 끄는 오락성 뉴스를 말한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보다는 가볍고 흥미 위주의 소식이 많다.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관음증을 자극하는 소재거리도 연성뉴스에 속한다.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의 가십거리, 주변에 일어나는 신변잡기의 이야기, 재테크, 건강 등도 연성뉴스다.

연성화는 요즘 미디어의 트렌드다. 극심한 미디어산업의 경쟁이 뉴스를 말랑말랑하게 하고 있다. 일상에서 지친 대중들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보다는 가볍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리를 선호한다. 뉴스의 연성화는 손쉽게 선정화로 이어진다. 선택받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눈길을 먼저 끌어야 한다. 충성 독자가 구독료를 내고 뉴스를 공급받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열독률이 바로 매체의 영향력이고, 그것은 바로 광고 수입으로 직결된다.

미디어는 더 자극적이고, 더 선정적인 이슈를 찾는다. 모든 콘텐츠가 빠르게 소비되는 온라인 시대는 뉴스 연성화에도 가속도를 붙였다. 한 클릭 한 클릭이 곧 매체의 수입이고 영향력이 된다. 낚시 제목을 다는 것은 편집 기술로 대접받는다.

물론 뉴스 연성화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뉴스를 쉽게 독자들에게 전달한다는 측면에서는 필요성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뉴스를 재미있게 보도하는 것과 재밌기만 한 뉴스를 보도하는 것은 다르다. 미디어 소비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 토크쇼 프로그램인 ‘데일리 립’은 연성뉴스를 취급하는 프로그램이다.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다루는 게 특기다. “약도 달아야 먹기 편하다”(진행자 잭)는 방송철학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제작 의도와 달리 연성뉴스는 뉴스의 가치를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한다.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는 끔찍한 뉴스는 흥밋거리로 소비돼 버린다. “지구 전체가 파괴된다는 소식은 재밌으면 안 돼요. 무섭고 불편해야 할 소식이라고요!” 케이트는 분통을 터트린다.

“매일 밤을 지새우면서 울어야 해. 우리 모두 100% 뒈진다잖아!” 케이트는 눈물을 흘리며 스튜디오를 뛰쳐나가지만 시청자들의 반향은 없다. 방송 후 특집을 다룬 곳도 없고, 심지어 일기예보나 교통상황보다도 검색량이 적다.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이날 팝스타의 약혼 소식이다. 케이트는 말한다. “이해가 안 돼요. 왜 사람들이 무서워하지 않는 거죠?”

네이버 영화 : 돈 룩 업
네이버 영화 : 돈 룩 업
↑ 출처 네이버 영화 : 돈 룩 업

언로가 막히면 진실도 막힌다. 미래학자들은 빠르게 발달하는 IT가 인류에게 진실을 선사할 거라 기대했다.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팩트체크할 수 있게 됐을 때 거짓이 설 자리는 없다. 인터넷은 진실을 제공하는데 기여를 했을까. 미래학자들이 몰랐던 것이 있다. 인터넷망은 팩트도 실어 나르지만, 거짓도 실어 나른다는 것을.

가짜뉴스는 팩트보다 더 빨리 전파된다.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페이스북에 가짜뉴스가 공유된 수는 870만건으로 주요 언론사 뉴스가 공유된 수(730만건)보다 많았다. 2016년 옥스퍼드사전은 세계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했다. 그러면서 “탈진실화는 국지적 현상이 아닌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시대의 특성”이라고 진단했다. 탈진실의 중심에는 가짜뉴스가 있다.

문제는 가짜뉴스를 유통하는 사람들이 B급 인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트위터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계정(@realDonaldTrump)을 영구 정지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이 폭력과 혐오를 부르는 가짜뉴스의 진원지라고 봤다. 트위터 측은 “그 누구도 트위터를 폭력을 선동하는 도구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셀럽 발 가짜뉴스를 미디어가 비판 없이 수용할 때 대중은 진실과 거짓을 혼동하게 된다. 이는 합리적 판단을 가로막는 결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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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네이버 영화 : 돈 룩 업

다시 영화를 보자. 올린 대통령이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주장하자 여론이 동요한다. 혜성의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람의 비율은 37%로 3%포인트가 감소하고 혜성이 없을 거라 믿는 사람은 23%로 수치가 상승한다. 혜성 충돌 위협을 ‘자유를 박탈하려는 음모‘로 규정한 대통령 지지자들은 ’하늘을 올려보지 말자(Don‘t look up)’고 외친다. 민디 박사는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그저 진실을 말할 뿐”이라고 외쳐대지만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다.

SNS는 정보의 균형을 맞춰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서로 다른 성격의 글을 보며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확증편향이 발붙일 여지는 없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이 기대 역시 어긋났다. SNS는 혐오와 차별, 극단적인 주장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 더 기여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SNS가 제공하는 알고리즘이 개인이 좋아하는 것을 맞춤형으로 제공하면서 자신이 선호하는 주장과 사실만을 계속 소비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른바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이다. 필터 버블현상이란 인터넷 검색 업체나 SNS 등이 이용자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이용자가 특정 정보만 편식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들어서는 고정관념은 더 세지고, 진영논리는 더 공고해진다. 이는 때로 거짓을 진실로, 진실을 거짓으로 보는 색안경이 된다. SNS와 경쟁하는 기존 미디어도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충성고객의 이탈을 막기 위해 더 편향적으로 변해야 했다. ‘편파 해설’이 인기를 끄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출처 네이버 영화 : 돈 룩 업

올린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마침내 하늘에서 긴 꼬리를 드리우며 다가오는 혜성을 목격한다. 그제야 대통령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혜성의 궤도를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다. 방법은 하나다. 혜성을 조각조각 내버리는 것.

거대기업 ‘배시’의 CEO인 이셔웰이 혜성을 파괴하기 위한 로봇들을 우주로 보내지만 민디박사는 TV를 켜지 않는다. 미디어에 대한 기대는 이미 없다. 이셔웰은 지구가 아닌, 자기 사업을 위해 일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지구멸망이 가시화되자 TV 속 진행자들은 그제야 허둥댄다. 그들도 종말을 피할 수 없다.

뉴스의 연성화, 가짜뉴스의 범람 끝에 인류는 지구를 구할 기회를 놓쳤고, 전 지구적 재앙이라는 파국을 맞는다. 그 재앙의 끝에 미디어도 같이 몰락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은 단순히 사회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미디어는 결코 사회의 3자가 될 수 없다.

↑ 출처 네이버 영화 : 돈 룩 업

“미안한데 모든 대화를 재치 있고, 매력적이고 호감 있게 할 수는 없어요. 어떨 땐 할 말을 제대로 전해야 하고. 때론 듣기도 해야 해요” 민디 박사의 절규는 미국 미디어에만 향하고 있지 않다. 갈수록 상업화되고 진영화 되는 한국 언론에도 똑같은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사진 출처: movie trip 무비트립 유튜브,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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