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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인턴에게 배우는 인생의 행복
“내 마음 속에는 아직 음악이 있어요”
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 출처 Warner Bros. Korea : 인턴

나이가 들면 슬슬 걱정되는 게 노후 자금이다. 한국인의 삶이라는 게 그렇다. 아이 교육하랴, 생활비 대랴 정신없이 30~40대를 살다 보면 불현듯 50대를 마주한다. 운 좋게 집 한 채를 마련했다고 하더라도 그 외는 가진 것이 그다지 없다.

허리띠를 졸라맸건만 대출 이자와 원금 갚기도 빠듯하다. 국민연금과 개인연금, 퇴직연금 등 3종 연금을 들어도 넉넉한 노후를 즐기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62세에 은퇴해 20년 이상 연금만으로 살 수 있을까.

신문방송은 이런 불안감을 부추긴다. 노후를 위해서는 충분한 돈을 모아 두란다.
목표 은퇴자금으로 ‘25배의 법칙’이라는 것도 나왔다. 1년 치 생활비의 25배는 모아둬야 거기서 나오는 금융수익으로 은퇴 후 30년은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단다.

노년부부

1년에 3,000만 원을 쓴다고 하면 7억 5,000만 원이다. 말이 쉽지, 평범한 직장인이나 자영업자가 그만한 현금을 모으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넉넉한 노후 자금만 있다면 나의 노후는 정말 괜찮을까? 신문과 방송이 빠뜨리는 것들이 있다. 40년간 직장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70세의 벤(로버트 드 니로)은 말한다.

난 은퇴했고 아내는 세상을 떠났어요.
당연히 시간이 남아돌죠.
은퇴 생활요? 계속이지요.
창의적으로 소일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죠

행복한 노후의 삶에 질문을 던지다!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영화 <인턴>은 ‘어떤 노후를 보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30대 여성 줄스(앤 해서웨이)는 의류 쇼핑몰 회사 ‘어바웃더핏’의 대표다.

전업주부이던 그녀는 아이디어 하나로 창업해 성공했다. 창업 18개월 만에 회사는 100배 이상 커졌고, 직원도 25명으로 시작해 인턴 포함 220명으로 불어났다.

젊은 직원들로 구성된 이 회사는 역동적이다. 활기차다. 패기도 있다. 하지만 부족한 점도 있다. 인적 갈등이 생길 때 쉽게 조정하기가 힘들다. 치열한 사내 경쟁은 곧잘 직원 간 혹은 가정과의 불화를 일으킨다.

출처 네이버영화 : 인턴
↑ 출처 네이버영화 : 인턴

고용 기간은 최소 6주. 여기에 벤이 응시를 한다. 노인은 싫다며 정색하는 CEO 줄스에게 인사팀 담당자가 자신 있게 말한다.

평생 경험을 지닌 인턴을 상상해 보세요

출처 네이버영화 : 인턴
↑ 출처 네이버영화 : 인턴

벤은 전화번호부를 만드는 회사에서 40년을 일하며 부사장까지 지냈다. 은퇴하니 비로소 여유가 주어졌다. 처음에는 지긋지긋한 회사에서 해방된 기분을 즐겼다. 하루하루가 마치 무단결근하는 기분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모아뒀던 마일리지로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어디를 가든 집에 돌아오면 공허함이 느껴졌다. 일이 없는 삶. 사회에서 분리된 듯한 기분을 벤은 견디기 힘들었다.

벤은 이제 매일 아침 7시 15분이면 스타벅스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만난다.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의 구성원이 된 듯한 느낌. 그제야 벤은 살아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은퇴 후, 밀려오는 자아실현의 욕구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는 인간은 누구나 다섯 가지의 욕구가 있다고 했다. 욕구에는 순위가 있는데, 가장 아래에 ‘생리적 욕구’가 있다. 먹고 숨 쉬고 입고 자는 욕구다. 성적 욕구도 포함된다. 이 욕구가 채워지면 ‘안전의 욕구’가 생긴다. 신체적, 경제적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욕구다.

다음은 ‘사랑과 소속의 욕구’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욕구, 어느 한 곳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다. 친구들과의 교제, 가족을 이루고 싶은 욕구도 여기에 속한다. 이런 욕구들이 채워지면 4번째 욕구인 ‘존경의 욕구’가 생긴다. 누군가로부터 주목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명예욕, 권력욕에 해당한다. 자신감, 독립심, 자유 등 자존감도 ‘존경의 욕구’다. 가장 마지막 욕구는 ‘자아실현의 욕구’다. 자기 잠재력을 끌어내 뭔가를 이뤄내고 싶은 욕구를 말한다.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자아실현의 욕구,존경의 욕구,사회적 욕구,안전의 욕구,생리적 욕구

부사장으로 은퇴한 벤은 경제적으로 볼 때 1단계 생리적욕구와 2단계 안전의 욕구는 충족이 됐다. 먹고 입고 자는 것과 경제적 위험은 벗어났다. 충분한 노후 자금이 은퇴자에게 채워줄 수 있는 욕구는 여기까지다.

문제는 다음 욕구들이다. 벤은 골프도 치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카드놀이도 한다. 요가도 해봤고 요리도 배웠다. 화초도 가꾸어보고 심지어 중국어도 배운다. 정말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지만 ‘사랑과 소속의 욕구’는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

오전 잠시 들르는 스타벅스가 욕구의 일부를 메꿔주지만 있지만, ‘진짜’는 아니다. 그래서 벤이 찾는 곳이 샌디에고에 있는 아들이다. 피붙이인 아들 가족은 사랑스럽다. 가족이라는 소속감도 진하게 느껴진다.

출처 네이버영화 : 인턴
↑ 출처 네이버영화 : 인턴

하지만 4단계 욕구 앞에서 벤은 또 멈추어 선다. 아들네를 방문하는것으로는 ‘존경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들에게 너무 기댄다는 생각은 독립심과 자신감, 자존감을 무너뜨릴 뿐이다. 벤은 독백한다.

난 행복한 사람이에요.
다만 내 맘 어딘가에 빈구석이 있고,
그걸 채우고 싶어질 따름이에요

기회가 왔다. 장을 보러 시장에 들른 날, 우연히 구인 전단지를 본 거다 ‘고령 인턴 채용 (senior internship program). 우리는 당신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어바웃더핏’
채용조건은 그리 까다롭지 않다. 65세 이상으로 소매를 걷고 일할 마음의 자세를 갖춘 사람이면 된단다. 인터넷 전자상거래는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분야지만, 벤은 도전해 보기로 한다.

출처 네이버영화 : 인턴
↑ 출처 네이버영화 : 인턴

인턴이니 급료는 많지 않겠지만 상관없다.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도전적인 걸 해보는 것도 신난다. 무엇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기쁘다.

30대 여성 COE 줄스와 70세 인턴 벤의 만남은 이렇게 이뤄진다. 줄스는 부모님 나이 또래의 고령 인턴이 불편하다. 일 처리는 늦을 것이고 생각은 고루 할 것이다. 어쩌면 부모님처럼 잔소리만 잔뜩 늘어놓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벤에게는 40년 직장생활의 노하우가 있다. 갈등이 생겼을 때, 어려운 문제에 부닥쳤을 때 산전수전을 다 겪은 유경험자의 지혜로운 조언은 유용할 수 있다. 벤의 상관에 대한 깊은 충성심과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에 줄스는 서서히 마음을 연다.

출처 네이버영화 : 인턴
↑ 출처 네이버영화 : 인턴

‘의미 있게 늙어간다’는 것의 가치

벤은 남편의 바람으로 자신감을 잃어가는 줄스에게 “당신이 1년 만에 이룬 것을 보세요. 저는 내 인생에 이런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며 힘을 준다. 그러면서 “남편을 잡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옳지 않아요. 회사에는 열정이 있는 CEO가 더 필요합니다”며 줄스를 다독인다. 때마침 남편도 바람피운 것을 사과하고, 줄스는 회사를 계속 맡기로 하면서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프로이드는 말했다. ‘사랑과 일. 일과 사랑. 그게 전부다’라고. 일은 먹고 살기 위한 호구지책이지만, 동시에 자아를 실현할 방법이기도 하다. 퇴직자들에게도 적당한 일이 필요하다.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은 때로 세금 낭비라 비판받지만, 고령자들에게는 금전적인 지원, 이상의 가치가 있을 수 있다. 다만 그 일자리가 고령자의 경험을 십분 살릴 수 있다면 개인에게 더 보람될 것이고, 사회적으로도 더 유용할 수 있다.

출처 네이버영화 : 인턴
↑ 출처 네이버영화 : 인턴

영화 <인턴>은 연륜이란 무엇인지, 의미 있게 늙어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은퇴하면서 그들이 쌓았던 많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들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이들이 겪은 시행착오는 개인의 자산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자산이기도 하다. 이 자산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하는 질문도 이 영화는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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