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엔씨네마
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영화 <육사오>로 읽는 군복무 크레딧 제도
바람에 날려온 로또 한 장,
노후를 보장할까
바람에 날려온
로또 한 장,
노후를 보장할까
국민연금에는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추가로 인정해주거나 보험료를 지원해주는 ‘크레딧 제도’가 있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행위에 대해 보상하거나, 실업에 따른 납부 공백을 줄여 노후소득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크레딧 제도의 적용을 받으면 가입기간이 늘어나거나 납입액이 많아져 받을 수 있는 노령연금액이 더 커지게 된다. 다채로운 크레딧 중 군복무 크레딧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자.
제대까지 97일 15시간 30분 남은 말년병장, 박천우. 제대만 기다리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박 병장은 대대장 차에 딸려온 로또 한 장을 손에 쥐게 된다. 우연히 보게 된 로또 복권 당첨 방송. 숫자를 맞춰보니 6개 숫자가 모두 맞다. 1등 당첨. 당첨액은 무려 57억 원이다. 박 병장은 제대가 즐겁다. 부자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처세술을 읽으며 사회에 나갈 날 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쉽게 들어온 돈은 쉽게 나갈 수도 있는 법. 어디선가 날아온 바람이 책장 사이에 끼워 놓은 로또를 다시 날려버린다. 하필이면 그곳이 군사분계선 너머 비무장지대. 또 하필이면 그게 북한군 하사 리용호 손에 들어간다.
박규태 감독의 영화 <육사오>는 이렇게 시작한다. 2022년 개봉된 이 영화는 국내영화 부진 속에서도 관객 198만명을 동원해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특히 베트남에서는 한국영화 중 역대 최다 관객인 232만명을 끌어 모았다.
“이거이 육사오라고 하는 겁니다. 마흔다섯 개 번호 중 여섯 개를 맞추면 거금을 준다며 남조선 인민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극악무도한 자본주의 착취 기술이지요.” 로또 1등 당첨 확률은 814만 5060분의 1. 심지어 5000원짜리인 로또 5등도 당첨 확률은 47분의 1밖에 안된다. 후임과 함께 자본주의 착취 기술을 비웃던 리 하사는, 600만불짜리 1등 로또라는 것을 확인한 뒤 자본의 유혹에 빠진다.
날아가버린 로또를 찾으려는 박 병장과 당첨금을 받으려는 리용호는 마침내 비무장지대에서 만난다. 리 하사는 당첨금을 수령해 오면 10% 떼 주겠다며 박 병장에게 제안한다. 박 병장이 이를 받아 들일리는 만무하다. 박 병장은 자신의 소유임을 주장하며 남한의 유실물관리법에 따라 20%를 주겠다고 한다. 협상은 결렬이다. 57억 로또를 탐내는 사람들은 또 있다. 박 병장의 비밀을 알게 된 소초장은 15%를, 후임인 김 상병은 7%를 떼주기를 바란다. 북측 지도원도 이 비밀을 알게 된다. 결국 양측은 3대 3으로 만난다.
더 복잡해진 분배의 룰.
과연 합의에 이를 수 있을까?
병역법 3조는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로 분단된 전세계 유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성들에게 국방의 의무는 숙명이다. 천하의 BTS도 병역의 의무를 피하지 못했다. 육군과 해병대는 18개월, 해군은 20개월, 공군은 21개월간 복무한다. 요즘은 병사들의 월급이 많이 올라 꼬박꼬박 저축을 했다면 제대 때는 2000만 원을 모을 수 있다. 하지만 2000만 원이 병역에 따른 기회 비용을 완전히 상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복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국민연금 납입 기간 단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군복무 크레딧이다. 군복무 크레딧은 2008년 1월 1일 이후 입대해 6개월 이상의 병역 의무를 이행한 사람은 6개월의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추가로 인정받는 제도다. 대상은 현역병, 전환복무자, 상근예비역, 사회복무요원, 공익근무요원, 국제협력봉사요원 등이다. 군복무는 사회를 위해 기여한 행위로 군복무 기간 중 일부를 가입기간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뜻이다. 가입기간의 기준소득월액은 노령연금수급권 취득 당시에 적용된 A값(연금수급 전 3년간 전체 가입자의 평균소득월액의 평균액)의 2분의 1이다. 이에 드는 비용은 국가에서 전부 부담한다. 만약 군복무 중에 국민연금에 가입해서 보험료를 냈더라도 이와 상관없이 가입기간이 늘어난다. 또 군복무기간에 대해 추납을 했더라도 이와 상관없이 가입기간이 늘어난다.
만약 군복무 크레딧 적용을 받아 가입기간 6개월이 더해지면
2024년 기준 매월 약 11,000원의 연금을 더 받을 수 있다.
만약 군복무 크레딧 적용을 받아 가입기간 6개월이 더해지면 2024년 기준 매월 약 11,000원의 연금을 더 받을 수 있다.
군복무 크레딧은 전역 뒤 별도의 신고 절차가 필요 없다. 노령연금을 받을 시기(현재 기준 만 65세)가 되어 연금을 받게 될 때 6개월의 가입기간이 추가로 인정된 연금이 지급된다. 다만 군복무 기간 전부 또는 일부가 공무원연금법 또는 군인연금법 등의 타 공적연금 재직(복무)기간에 산입되는 경우에는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추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앞으로 군복무 크레딧의 인정 기간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에 따르면 군복무 기간 6개월만 인정하는 현행 군복무 크레딧을 복무기간 전체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보자.
57억원짜리 로또는 어떻게 됐을까?
남과 북의 병사들은 5대 5로 나누기로 한다. 로또는 근로로 인해 발생한 소득이 아니기 때문에 기타소득세 30%가 적용된다. 여기에 주민세 3%를 더하면 33%가 원천 징수된 뒤 차액을 당첨자에게 지급한다. 57억 당첨 로또의 실수령은 ‘39억1천4백9십5만9천7백1십2원’이다. 김 상병은 마침내 로또를 달러로 바꾼다. 남북 병사들은 사이 좋게 5대 5로 나눌 수 있었을까? 딸에게는 피아노를, 노쇠하신 어머님은 요양원에 모시고 싶다던 소초장 강은표 대위의 바람은 이룰 수 있게 됐을까? 답은 영화에 있다.
지난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