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VOL.203

편하게 보기
액티브 시니어 | write. 편집실 photo.한정현

나를 믿는 힘으로, 인생 2막을 디자인하다

CG 디자이너에서 패션 브랜드 대표까지, 펄이언니 조현주

조현주라는 이름 앞에 ‘시니어’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그 단어는 더 이상 나이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자신답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정의이자 태도다. 조현주 님은 오랫동안 방송국에서 CG 디자이너로 일하며 방송 그래픽의 선구자로 활약해왔다. 정년퇴직이라는 인생의 하나의 장이 마무리되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만의 속도로 인생의 다음 장을 디자인해 나가고 있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직접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금, 패션 브랜드의 대표이자 창작자로서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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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안녕하세요, 조현주입니다. 37년 동안 방송국에서 컴퓨터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해왔고, 현재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패션 브랜드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퇴직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패션 브랜드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옷에 대한 열정을 실현하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원단부터 바느질까지 하나하나 직접 챙기며, 좋은 옷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즘 제 하루는 샘플 체크, 패턴 수정, 원단 선택, 매장 진열용 옷 준비로 정신없이 흘러갑니다. 방송국 시절 다양한 프로그램을 동시에 맡으며 쌓인 습관 덕분에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는 데 익숙하고 그 과정이 오히려 즐겁습니다. 사실 이렇게 움직이는 시간이 저를 가장 저답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원단부터 바느질까지
하나하나 직접 챙기며,
좋은 옷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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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시간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였나요?
오랜 시간 일한 만큼,
정년퇴직을 앞두셨을 때의 마음도
남다르셨을 것 같습니다.

컴퓨터그래픽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시절, 방송국에서 자막, 폰트, 타이틀 디자인을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어가며 그 분야의 시작을 함께 했습니다. 대학 시절 금성사에서 한글 출력용 폰트 개발에 참여했던 경험이 계기가 되어 KBS에 입사했고, 이후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의 그래픽 작업을 맡으며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SBS 개국 이후에는 <상속자들>, <별에서 온 그대> 같은 드라마 타이틀도 제작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죠. 당시에는 CG 장비가 빠르게 바뀌었기 때문에 늘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 했고, 익숙한 방식을 내려놓고 다시 배우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쉽지 않았지만, 불가능해 보였던 장면이 구현될 때마다 느끼던 성취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정년퇴직을 앞두었을 때는 후배들이 더 함께하자고 붙잡았지만, 제 마음은 이미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정말 많이 했고, 이제는 충분하다’는 생각이었죠. 37년 동안 충실히 일해왔다는 만족감 덕분에, 미련 없이 퇴직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퇴직 후 유튜브와 패션 브랜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퇴직 후 가장 먼저 도전한 일은 유튜브 채널 개설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방송국에서 콘텐츠를 제작해온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제는 내 이야기를 해보자’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더군요. 처음에는 제작진과 함께 ‘펄이지엥’이라는 채널을 운영했지만, 방향성의 차이로 그만두고 ‘펄이언니 현주씨’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훨씬 저답게, 편안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유튜브 콘텐츠를 기획하다 보니 ‘내가 옷을 꽤 잘 본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좋은 옷이 드물다는 생각에 결국 ‘내가 직접 만들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2023년 10월, 패션 브랜드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2024년 2월 22일 제 생일에 맞춰 정식 런칭하였고, 같은 해 10월에는 오프라인 매장도 열게 되었습니다. 병원 납품이나 팝업스토어 경험을 하면서 '이 옷이 누군가에게 필요하구나'하는 실감을 하게 되었고, 그 반응이 지금은 제게 큰 힘이 되어 브랜드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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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만의 스타일 철학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많은 분들이 ‘나이에 맞게 입어야지’, ‘이 나이에 무슨’ 같은 말씀을 하시지만, 저는 그런 나이 중심의 기준에 갇히고 싶지 않습니다. 나이를 억지로 감추려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나에게 어울리는 감각’을 아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수록 체형에 변화가 생기지만, 무조건 감추기보다는 조화롭게 입는 것이 더 멋스럽다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얇은 시스루 원피스 위에 크롭 재킷을 겹쳐 입으면 체형도 정리되고 시원한 인상을 줄 수 있어요. 처음엔 용기가 필요할 수 있지만, 막상 시도해보면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기죠. 결국 스타일은 용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알고, 믿고 입는 것. 저는 그게 진짜 멋이라고 믿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요즘은 시니어의 삶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한때는 60대가 인생의 마무리 시점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인생 2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죠. 저 역시 ‘지금부터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가끔 친구들이 “이 나이에 좀 쉬지 그래?”라고 말하곤 하지만, 저는 매일 무언가를 만들고, 고치고, 나누는 그 과정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방송국에서 37년간 매일 결정을 내리며 일해온 경험이 지금도 저를 움직이게 합니다. 결국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나를 믿는 마음’입니다.
브랜드를 시작한 이후 다양한 옷을 기획하고 제작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은 “왜 이렇게까지 하지?” 싶은 순간도 있지만, 힘들기보다 오히려 즐겁습니다. 유튜브 역시 마찬가지예요. 댓글 하나, 반응 하나가 큰 동력이 됩니다. 제가 만든 옷이나 콘텐츠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저를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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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민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받아보셨을 때 기분은
어떠셨나요?

국민연금을 처음 수령했을 땐 정말 눈물이 날 만큼 감격스러웠습니다. 내가 오랜 시간 납부해온 돈인데도, 매달 꼬박꼬박 내 계좌에 들어오는 걸 보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 싶더라고요. 단순히 생활비가 아니라, 그동안 살아온 시간을 나라가 “잘 살아왔다, 수고했다” 하고 인정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국민연금 제도가 시작된 초기부터 납부를 이어온 ‘국민연금 1세대’입니다. 제도가 시작될 무렵부터 자동으로 납부하기 시작했고,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쌓여왔죠. 사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내가 납부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없었는데, 막상 받게 되니까 그 무게가 다르게 다가왔어요. 그냥 돈이 아니라, 오랜 시간 성실하게 살아온 삶에 대한 인정 같았달까요.
지금도 사업을 하면서 지출도 많고 신경 쓸 일도 많지만, 연금이라는 고정적인 소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꽤 든든해졌어요. 앞으로 이 연금을 기반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천천히 실현해나가고 싶어요. 저에게는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인생 2막을 더 안정감 있게 설계할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되어주고 있어요.

“앞으로 이 연금을 기반으로
하고 싶은 일들도 천천히
실현해나가고 싶어요.
저에게는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인생 2막을 더 안정감 있게
설계할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되어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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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을 받기까지
어떤 준비나 고민이 있으셨나요?

연금을 언제 받을지는 생각보다 고민이 많았어요. 남편이 먼저 연금을 받기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정보도 많이 들었죠. 그중에 ‘연기 수령을 하면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말도 있어서 한참을 계산해봤어요. 제 상황에서는 5년 늦게 받으면 수령 금액이 늘긴 하지만, 그 차이를 메우려면 최소 15년은 지나야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그냥 제 시기에 맞춰 받기로 했어요. 상황은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소득이 있는지, 건강은 어떤지, 앞으로 계획은 어떤지에 따라 판단도 달라져야 하고요. 본인의 삶에 맞게 꼼꼼히 따져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새로운 목표나 계획은 무엇인가요?

지금은 시작한 브랜드를 제대로 자리 잡게 만드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저는 옷이 단순히 몸을 가리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고 기분을 전환해주는 힘이 있다고 믿어요. 좋은 원단, 정성스러운 바느질, 섬세한 디테일로 만들어진 옷은 입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요.
앞으로는 아픈 분들이나 간병하는 가족들처럼 일상에 위로가 필요한 분들에게 따뜻함을 전할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어요. 옷을 입는 순간 '나를 돌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도록요. 그런 브랜드로 성장한다면, 저는 이 일을 오래오래 하고 싶을 것 같아요.